단삼 2025-05-02 16:45
율의 시선
『율의 시선』은 타인과의 눈 맞춤을 어려워하며 관계 맺기에 서툰 중학생 ‘안율’의 시선을 따라간다. 진심 어린 교류를 이해하지 못하며 반 친구들과도 피상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던 율은 어느 날 독특한 아이 ‘이도해’를 만나며 자신의 세상에 균열을 느끼게 된다. 율은 그동안 억눌렀던 자신의 감정과 꽁꽁 숨겨 왔던 상처를 마주하고 이도해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우정은 율을 어디로 데려갈까?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 가슴을 울리는 문장과 감동적인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 창비의 청소년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아름다운 작품이다.
단삼 2025-05-03 23:33
P 53

아침의 하늘은 파랗고, 저녁의 하늘은 붉고, 밤의 하늘은 검다. 하늘은 이 세 가지 색만을 띤다고 한다. 하지만 나만 아는 사실인데, 저녁이 밤으로 바뀌는 순간의 하늘은 녹색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녹색이다. 녹색은 변화의 색. 변화는 고통을 가져온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
단삼 2025-05-06 22:27
P 144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
단삼 2025-05-07 12:07
P 179
"아파."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아프다. 하지만,
"아픈 건 익숙해."
늘 달고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상처는 있지만 없는 척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늘 외던 주문을 되뇌었다. 무감각해져라, 무감각해져라. 나는 아프지 않다. 하지만 이도해의 한 마디에 주문은 깨져 버렸다.
"익숙한 게 더 아픈 거야."
"……."
"말기 암 환자들에게는 모르핀을 쓴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덜어 주려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암 말기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지. 마음도 마찬가지야."
타인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내 고통도, 해결법에 대해서도. 너는 그저 아는 체할 뿐이야.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목 끝까지 꾸역꾸역 차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것들을 뱃속으로 집어넣으려 애썼다. 하지만 한껏 열기를 머금은 말들은 좀처럼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그럼 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아물게 해야지."
"어떻게 아물게 하는지 몰라, 나는."
"네 상처에도 장례를 치러 줘."
이도해가 흙을 한 줌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알갱이가 흘러 내리더니 이내 손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헛되고 하찮은 것이 내 마음과 닮았다.
그래서 나는 흙을 쌓아 올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