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삼 2025-04-02 08:01
콘클라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2022년 10월 19일,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 교황이 선종했다. 즉시 전 세계 곳곳에 있던 118명의 추기경들은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콘클라베)에 들어간다. 선거 관리 임무를 맡은 로멜리의 시점을 따라, 주요 후보를 두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권력의 미세한 이동 경로가 섬세한 필치로 그려가는데 물론 선거는 단번에 승부가 나지 않는다.

처음 투표할 때만 해도 혼란스러워하던 유력 후보들은 첨예한 표 차이 속에 조금씩 속내를 드러내며 세력을 모은다. 가장 숭고한 자리에 오르기 위한 이들의 야심을 예상이라도 한 듯, 선종 직전 교황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교황을 만났던 사람,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추문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마침내 교황이 생전 써왔던 방의 봉인마저 풀린다. 여기에 교황이 은밀하게 임명한 의중 추기경 베니테스가 콘클라베 직전 등장하며, 상황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데…….
단삼 2025-04-06 20:18
P 21
"……주여,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하옵소서. 빛이 영원히 그를 비추게 하소서 (Requiem aeternam dona ei, Domine: et lux perpetua luceat ei) ……."
단삼 2025-04-06 20:21
P 23
"세데 바칸테 (Sede Vacante). 이제 교황 자리는 공석입니다." 트람블레이가 선언했다.
단삼 2025-04-06 20:36
P 38
행렬은 문을 지나 10월의 한기 속으로 빠져나왔다. 이슬비는 어느새 그치고 별까지 몇 개 보였다. 스위스 근위병 사이를 통과하자 온갖 다채로운 조명이 운구를 맞이했다. 구급차 경광등, 사진사들의 백색 스트로보 효과, TV 촬영팀의 노란색 섬광, 그리고 그 너머,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윤곽이 어둠을 비집고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운구가 구급자에 도착할 때쯤 로멜리는 작금의 세계 교회를 그려 보았다. 교황 성하와 25억의 영혼들. 마닐라와 상파울루 슬럼에서 TV 주변에 모여든 빈민들, 도쿄와 상하이의 휴대폰에 빠진 출근 인파, 보스턴과 뉴욕 술집에서 스포츠를 즐기던 사람들이 갑자기 들어온 속보에…….
가라, 그리하여 온 세상을 제자로 만들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하라…….
단삼 2025-04-08 13:16
P 57
이곳이 방주로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란의 파도에 휩싸인 방주.
단삼 2025-04-13 10:27
P 329
그리스도의 오른손에 새긴 일곱 별, 심판의 일곱 봉인, 일곱 청사와 일곱 개의 트럼펫, 주님 성좌 앞에 선 일곱의 성령……
"로멜리 추기경……."
"베니테스 추기경……."
……일곱 차례 예리코시 순회, 요르단강에서의 일곱 차례 침례…….
단삼 2025-04-13 10:34
P 363
성 베드로의 종이 세 번 울렸다.
투표가 끝났다.
단삼 2025-04-13 10:38
P 369
이윽고 베니테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노켄티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