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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아프다. 하지만,
"아픈 건 익숙해."
늘 달고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상처는 있지만 없는 척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늘 외던 주문을 되뇌었다. 무감각해져라, 무감각해져라. 나는 아프지 않다. 하지만 이도해의 한 마디에 주문은 깨져 버렸다.
"익숙한 게 더 아픈 거야."
"……."
"말기 암 환자들에게는 모르핀을 쓴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덜어 주려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암 말기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지. 마음도 마찬가지야."
타인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내 고통도, 해결법에 대해서도. 너는 그저 아는 체할 뿐이야.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목 끝까지 꾸역꾸역 차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것들을 뱃속으로 집어넣으려 애썼다. 하지만 한껏 열기를 머금은 말들은 좀처럼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그럼 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아물게 해야지."
"어떻게 아물게 하는지 몰라, 나는."
"네 상처에도 장례를 치러 줘."
이도해가 흙을 한 줌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알갱이가 흘러 내리더니 이내 손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헛되고 하찮은 것이 내 마음과 닮았다.
그래서 나는 흙을 쌓아 올리기로 했다.